11월 19일,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라는 공식 명칭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만 멈추어 생각해본다면,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평생의 상처가 시작된 날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관심이라는 작은 불씨가 삶을 바꾼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아동학대’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뉴스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아동학대 사건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분노와 충격 속에 며칠간은 마음 아파하지만, 곧 우리는 그 일상을 잊곤 한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특정한 지역,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아동학대 사례는 약 4만 5천 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123건, 약 12분에 한 번꼴로 아동학대가 발생한 셈이다.
그중 약 80% 이상이 부모 등 가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아이를 가장 보호해야 할 존재가 오히려 가해자라는 현실. 이는 단순한 법적 처벌이나 시스템의 정비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왜 11월 19일일까?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은 2000년,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NGO 단체인 ‘세계아동학대예방협회(WWSF)’에서 지정한 날이다. 이 날은 전 세계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아동 보호를 위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2004년부터 이 날을 공식 기념일로 인식하고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캠페인과 문구 속에서 과연 진심 어린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관심’은 행동으로 완성된다
아동학대를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관심’이다. 이웃의 아이가 갑자기 말수가 줄었다거나, 멍이 자주 보인다거나, 혹은 학교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그건 분명 ‘신호’다. 많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누군가 그 신호를 조금만 일찍 알아챘더라면 자신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 말한다.
관심은 감시가 아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이상 행동에도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이웃 간 소통이 줄어드는 시대에는 이러한 ‘사회적 관심망’이 더욱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이하여 실천할 수 있는 일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행동만으로도 분명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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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아이에게 “요즘은 어때?”라고 말을 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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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의심 신호를 받았을 경우,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112)이나 지자체에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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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캠페인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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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등에서 아동 보호 관련 정보 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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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자녀에게 정서적 안전감을 심어주는 양육 실천하기
특히 ‘신고’는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지만,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결정이다. 잘못된 신고가 걱정되더라도 전문가가 판단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다.
‘관심’이라는 선물을 전하는 날
11월 19일은 단순히 아동학대 예방을 떠올리는 날이 아니라, ‘관심’을 선물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 관심이 아이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어둠 속의 빛이 되고, 사회 전체로는 건강한 보호망을 만드는 시작점이 된다.
우리 모두는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지금은 그 관심을 나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이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부모, 교사, 이웃,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다. 그렇기에 아이 한 명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 이제 단 하루의 관심이 아닌, 매일의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시작은 “너 괜찮니?”라는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